전국 퀴어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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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이야기/전퀴모 아카이빙

[전퀴모 아카이빙] 광주가 고향인 재경의 광주살이

전국퀴어모여라 2021. 5. 26. 08:49

광주가 고향인 재경의 광주살이

재경이 참여한 광주 행사 

1. 2014년 광주 방문 
2. 2015년 광주 방문(with라잇온미,광주여행스케치)
3. 2017광주퀴어아카데미
4. 2017년 전퀴모 수다회
5. 퀴어라이브 in 광주(진수님 후기, 고은하님 후기, 도담님 후기)
6. 2018년 <나의 정체성 소개하기>
7. 2019년 크리스마스

8. 2019년 설날 모임
9. 2019년 전퀴모 수다회

10. 2019년 추석 모임
11. 전퀴모 책모임
12. 2020년 설날 모임
13. 2020년 <퀴어-되기> 윤송일님 후기, 현님 후기
14. 2020년 <퀴어-되기> 영상

1. 전국퀴어모여라(이하 전퀴모)가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저는 광주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광주에서 어린 시절에 갔었는데 너무 좋아서 지금도 다니는 곳,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은 없어요. 어떤 곳들은 사라지기도 했고. 서울을 너무 가고 싶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10년 남짓 살았지만, 서울 물가가 너무 비싸서 제주도에서 잠깐 살았었어요. 오래 제주도에서 머물 수는 없었어서 어디론가 가기는 해야겠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었어요.

 

그럼 어디에서 살지? 아니, 그보다도 서울을 포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서울은 동네마다 퀴어 커뮤니티가 있고, 매주 재미난 행사도 열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퀴어문화축제를 지하철만 타고 가면 즐길 수가 있는데, “내가 서울이 아닌 곳에서 퀴어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컸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서울 살 때 전퀴모를 만들었었잖아요? 퀴어 친구가 없으면, 더 많은 퀴어친구를 만들면 되는거 아니었나요? 제가 만들었지만, 전퀴모 활동을 하면 된다는 걸 깨닫자마자 가벼운 마음으로 광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광주에 와서 자리를 잡고 보니, 어릴 때는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던 퀴어와 앨라이들이(어린시절은 이성애자로 살았어서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요) 엄청나게 많이 계신 거예요. 얼마나 기뻤던지.

 

광주에서 ‘전퀴모 당충전’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전국을 돌면서 열리던 ‘퀴어아카데미’, ‘퀴어라이브’를 함께 했어요. 명절과 공휴일마다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내 삶의 방향도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퀴어가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면, 내가 어떤 정체성,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할 마음이 생겼달까요.

 

내가 나인 채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이 지속된다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도 있고, 더 이상 ‘퀴어’라는 단어가 성소수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전퀴모는 저에게 나에서 내가 사는 지역으로, 성소수자만 중요한 삶에서 다른 소수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확장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늘 재밌는 전퀴모 광주 

2. 전퀴모 활동의 권태기가 있었는지?

권태기라기보다는 몸이 지친 적이 있어요. 전퀴모의 모토는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기’에요. 그래서 무리하게 일을 벌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무리가 가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면 과감하게 포기하곤 해요. 활동은 길게 오래 가야지, 짧고 굵게 가는 건 좀 속상한 일이거든요.

 

근데 문제는 ‘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게 사람마다 다 다르기도 하고, 일을 하는 속도와 방식도 다 다르니깐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일이었는데 미래의 나를 너무 믿은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요.

 

가장 힘들었던 게 2021년 초반이 아니었나 싶어요. 1월이 됐으니까 1년 계획을 짜잖아요. 제가 담당하는 광주 전퀴모는 그때 조금 지쳐 있었어요. 11월과 12월에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에 강사로 참여를 했는데 준비기간이 꽤 길었고, 준비하는데도 에너지를 많이 쏟았거든요. ‘할 수 있을만큼’이 훌쩍 넘었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수가 없었어요. 조금 지쳐가다가 21년 1월이 되니까 번아웃이 온 거예요. 그런데 이미 전퀴모는 연간 계획이 나와서 전퀴모 아카이빙팀과 광주팀과 같이 일을 해야 했어요. 평일에는 출근하고, 주말에는 회의를 2개씩 하니까 아…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평소에도 몸이 안좋은데 이러다가 죽지 싶었어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다가, 2월부터 4월까지만 쉬자는 결론을 내렸었어요. 올해가 자의로 활동을 쉬어본 첫 해였어요.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제로의 예술> 속 <퀴어-되기>

3. 비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커뮤니티가 존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2015년이었나요, 부산에서 부산대성소수자동아리가 생기고, 몇년 있다가 그 사람들이 졸업을 하고 난 뒤에 그 모임을 부산 전체로 확대해서 계속 운영을 하더라고요. 운영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는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경우가 비수도권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우라고 생각해요. 전북대 성소수자 동아리도 지금은 전주를 대표하는 커뮤니티가 되었고요.

 

대부분의 경우는 대학 동아리를 운영을 하거나, 그마저도 군대나 취업 등의 이유로 담당자가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되면 지속되지 않는 경우들이 많더라구요. 그곳에서 계속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계속 바뀐다고 해도 운영이 될 수 있지만 직장과 학교 문제때문에 수도권으로 이주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은 전체적인 한반도의 문화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4. 당신에게 ‘퀴어’ 또는 ‘퀴어함’이란 무엇인가요?

‘이성애/남성/성인/중년’이 아닌 것이 전부 퀴어함이 아닐까 싶어요. 저 분류는 철학자 데리다(아마 맞을겁니다)가 ‘소수자-되기’라는 이론을 이야기 하면서 쓴 분류법이거든요. 저들이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사람들이 소수자가 되는 거라고 말이죠. 저기에 대다수의 종교 ‘기독교’ 혹은 ‘장애가 없는’이 붙으면 더 명확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