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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아카이빙]부산의 흥부자 혜연님-2

전국퀴어모여라 2021. 7. 2. 08:23

부산의 흥부자 혜연님-2

[전퀴모 아카이빙] 부산의 흥부자 혜연님-1과 이어서 읽어주세요~! 

 

12. 부산에서 성소수자 활동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이 있으면 듣고싶어요.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부산이라는 지역을 좀 다방면에서 깊게 볼 수 있었다는 거였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면 이런 모습을 다방면으로 볼 수 있을 듯! 

13. 어떤 점을 깊게볼 수 있었나요?

-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시민단체들과도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면서 부산에 산재돼 있는 다른 문제들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 다른 시민단체들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면서 다양하게 부산을 볼 수 있었어요.

 

14. 맞아요. 다양한 관점이 생기는게 활동을 하면서 생기는 좋은 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 아쉬운 점은요?

-다른 활동도 그렇겠지만 활동가 중심으로 단체가 굴러가서, 활동가 한명에게 일이 너무 많이 몰리고, 그것 때문에 지쳐서 활동을 쉬게 되는 경우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점이 많이 아쉬웠어요.

 

15. 활동가중심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처음 활동을 시작하면 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고, 이 단체에 있고 싶다 하는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활동가도 경력이 있으면 일을 빨리 하니까, 일들과 노하우가 분배가 잘 되지 않고 하던 활동가만이 일을 계속 하게 되는거죠.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열의는 가득했지만 점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네”라고 생각하고 의욕을 잃고, 오래 일한 활동가들은 “일이 너무 많네. 너무 힘드네”하면서 활동을 그만두기도 하고요.

 

16. 맞아요. 그 지점 동의 합니다. 다음 질문이에요. 부산에서 QIP말고 홍예당 말고 다른 성소수자 혹은 소수자 커뮤니티가 지금 활동중인가요?

-지역 대학 내부에 퀴어 커뮤니티가 있어요. 하지만 이전만큼 활성화 되지는 않고, 청소년 성소수자 모임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대부분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 같아요.

 

17. 다른 지역들도 그렇더라구요.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단체들이 많아지는 건 왜일까요?

-성소수자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뭉칠 수 있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성정체성도 성적지향도 다 다른데, 다양성을 포용하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요. 저는 의욕 넘치던 초기 QIP 멤버들이 모두 직장을 찾아서 떠난 것도 이유가 크다고 생각해요. 요즘 먹고 살기도 팍팍하고, 대학도 들어가자마자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기에도 바쁘니까.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고요.

 

18. 전보다 살기 팍팍해진 건 많이 느껴요. 마지막으로요. 혜연님이 다시 퀴어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상상을 한다면, 가장 중요한 특징 3가지는 뭐가 있을까요?

-이 질문 고민 많이 했어요. 전 첫번째는 지원. 물질적인 지원도 있으면 좋겠지만, 체계화된 상담이나 긴급 지원이 가능한 단체면 좋겠어요. 저는 힘들때는 개인적으로 지원해주고 상담해주는 커뮤니티가 너무 좋았거든요.

 

                        힘들 때는 힘이 되는 커뮤니티를 꿈꾸는 혜연님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19. 그게 긴급한 지원같은 건가요, 아니면 회원교육같은 지속적이고 얕은 지원인가요?

-얕은 지원보다는 긴급한 지원이요. 예를 들어 한 명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혹은 자살충동을 느낀다. 혹은 집에서 쫓겨났다. 이런 경우에 지원 가능한 사람들이 바로 출동을 하는 거죠. 그런게 가능한 단체면 좋겠어요.

 

20.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네요.

-작년에 부산 성폭력 상담소에서 짹짹이라고 부산 성소수자 상담 센터를 잠깐 운영했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부산성폭력 상담소에서는 지원이 끊겨서 짹짹은 운영하지 않지만 현재는 성소수자들도 위기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두번째는 활동단체가 아니라 친목 커뮤니티였으면 좋겠어요. 그냥 노는 커뮤니티를 하다가 운동으로 이어진 게 QIP같은 경우였는데, 이렇게 운동으로 확장되는 걸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그냥 우리끼리 놀자, 이런 분위기의 커뮤니티였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모임이요.

 

21. 세번째는요?

-지속력.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단체요. 크게 봤을 때는 오래 같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23. 그러면 혜연님은 부산 말고 다른 곳에 살려고 고민한 적이 있나요?

-아 있죠. 부산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 동지들이 서울에 갔어요. 부산에 일자리가 없거든요. 다들 떠나고 잠깐 외로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 고민 했어요. ‘아, 나도 서울에 가야하나?’

 

24. 결국에는 안 간 이유가 있나요?

-부산에 남아 있는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결국 못갔죠. 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게 많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공동체는 서울에서는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25. 서울에서는 왜 못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적으로 집값도 비싸지만, 기회의 폭이 다를 것 같았어요. 직장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데 서울을 잘 모르기도 하고, 서울에서 처음부터 공동체를 꾸린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도 같았고. 결정적으로 저는 서울이라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었고요.

부산은 제 일생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애정도 많이 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여기 남아 있기도 하고. 서울에 간 친구들도 거기가 좋아서 간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간 거니까 만나면 부산에 내려오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러면 내가 부산에 남아서 공동체를 만들면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내려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죠.

 

맞아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지역을 기반한 공동체를 만들기 힘드니깐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긴 시간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