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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아카이빙] 서울 토박이 시경의 대전살이-2

전국퀴어모여라 2021. 5. 17. 09:00

서울 토박이 시경의 대전살이-2

[전퀴모 아카이빙] 서울 토박이 시경의 대전살이-1 와 이어서 읽어주세욥! 

 

 

4. 수도권/비수도권에(본인이 지금 사는 곳) 사는 이유는? 다른 곳이 아닌 여기에 사는 이유? 다른 곳으로 이사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이사왔어요. 그 당시 만나던 애인과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승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노후를 기대할 수 있으려면 수입원이, 그러니까 직장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파이팅넘치고 스펙타클하고 버라이어티해서 재미는 있었지만, 업무강도가 너무 세서 건강한 몸으로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직 준비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대전에 자리가 나서 오게 되었습니다. 정작 애인과는 헤어졌지만요.

 

대전은 제가 주거지로서 경험한, 유일한 서울 외 지역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대전에 와서 ‘한국에는 서울만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기 때문인데요. 대전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서울 중심적으로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연애를 하려고 서울에 가는 게이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다양성이라는 문화는 아직 대한민국에 자리잡지 못했어요. 서울에만 약간 존재할 뿐이죠. 내가 감각하고 있었던 ‘동시대’의 특성에 대해서 기준점을 다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대전에 살고 있고 당분간 대전에 있을 거에요.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로요. 하지만 제게 1순위는 아직 ‘일’이에요. 언젠가 순위가 ‘가족’이나 ‘친구’로 바뀐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는 ‘일터’를 기준으로 거주지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현재로서는 순전히 ‘일’ 때문일거에요.

시경님이 일때문에 살고 있는 대전의 봄 

 

5. 현재 사는 곳에 어떤 노력이 더 있어야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 ‘어떤’ 커뮤니티가 있어야 할까를 먼저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단순히 성적 정체성이 같아서 만나는 커뮤니티만으로는 확장성의 한계가 있어요. 더 이상 ‘퀴어’의 의미가 성소수자에 국한되지도 않고요. 어떤 사람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성 정체성이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거든요. 오히려 다양한 취미를 공통요소로 하는 커뮤니티가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죠.

 

대전은 시민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외부에서 유입된 공공기관이 많은 도시입니다. 보수적이고, 의례적이고, 겉으로 상냥하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 누가 뭘 하든 그러려니 하지만 그렇다고 텃세가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런 도시에서 ‘퀴어’하다는 것은, 확실히 달라보이고 시선을 끄는 요소가 됩니다. 관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 때 ‘나는 안전하다’라는 확신이 없으면 순식간에 위축되고 퀴어 커뮤니티는 발전이 아니라 아예 생겨나는 것조차 어려워지겠죠.

 

내가 사는 곳에 퀴어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지속적으로 ‘퀴어’한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라는 걸 떠드는 거에요. 확성기를 들고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은근하고 의연한 방법으로요. 나 자신의 일상성을 굳건히 하는거죠. 퀴어함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 요소라는 것. 그 다음에서야 수용과 포용이 가능해진다고 믿어요. 나 스스로 설 수 없으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거든요. 서로의 퀴어함을 포용할 수 있는 관계, 각자의 일상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커뮤니티의 지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6.  속하고 싶은 퀴어 커뮤니티를 상상해본다면 가장 중요한 특징 3가지는?

 

- 위에서 이야기한 일상성. 매일 반복됨에서 오는 익숙함. 따라서 편안하고 안전해야 하고(재경이 먼저 말해서 넘어갑니다 ㅋㅋ), 마지막으로는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유머러스함. 산다는 건 특별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질리지 않는 익숙함을 연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질리지 않으려면 어쨌든 계속 깔깔댈 수 있는 재밋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 재밌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