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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이야기/전퀴모 아카이빙

[전퀴모 아카이빙] 부산의 흥부자 혜연님-1

전국퀴어모여라 2021. 6. 29. 09:27

부산의 흥부자 혜연님-1

혜연님이 참여한 전퀴모 행사와 후기 

1. 부산에서 전퀴모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  
2. 부산에서 만나 더 특별한 전국퀴어모여라
3.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부산팀을 만나다!



혜연님은 처음 만났을 때 힐을 신고 오셨다. 아무리 한껏 꾸며도 기차를 타고 나면 예쁨과 잘생김이 반은 사라지곤 하는 전퀴모 멤버들 사이에서 혜연님의 한껏 꾸민 모습이 무척 반짝반짝했었다. 혜연님은 부산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전퀴모 멤버들을 대신해서 뒤풀이 자리를 알아봐 주셨는데, 안주며 술이며 너무 맛있었다.

그 뒤로 혜연님이 속해 있던 QIP는 제1회 부산퀴어문화축제를 열었고, 집행 예산에 벌금을 미리 넣어버리는 호기에 반해 QIP는 전퀴모가 사랑하는 단체가 되어 버렸다.

전퀴모가 사랑하는 QIP에서 2019년에 보내준 5주년 축하 메시지 

 

1.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계속 부산에 계시죠?

-지금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예전에 일하던 상담소에서 외부에서 하는 상담사로 가끔 일을 하고도 있고요. 부산시교육청에서 하는 영어로 하는 영상 강의도 찍고 바쁘게 지내고 있답니다.

 

2. 처음에 혜연님을 만난게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부산멤버들과 함께 부산에서 만난 거였었어요. 그때 후기에 참 멋진 사람들이라고, 만남이 기대가 된다고 후기도 써 주셨었는데 전퀴모와의 만남은 어떠셨었나요?

-처음에 전퀴모가 부산에 와서 QIP를 만났을 때는 못갔엇고, 그래서 두번째 부산에 왔을 때는 부산에 활동하는 다른 단체들을 같이 만나서 연대하자 이런 마음으로 갔었어요.

클레이카드도 하고. (이날 처음으로 클레이카드를 선보였다) 부산과 서울의 활동과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게 좋았어요. 퀴어커뮤니티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부산에서 QIP를 만들고, 활동하는 어려움을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거든요.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분들을 만나게 돼서 참 뜻깊었어요. 그 분들과는 전퀴모가 다녀간 이후로도 몇번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어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퀴모를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었거요. 무슨 말을 했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나눌 수 있어서 숨통 트이는 시간이었어요.

 

숨통트이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3. 맞아요. 재밌었어요. 혜연님은 QIP에 언제 들어가셨었죠?

-QIP를 들어간 건 아니고요, 창립 멤버 중에 한 사람이에요. 2013년 3월 창립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답니다.

 

4. QIP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어요? 정체성도 다른데.

-이게 정말 웃겨요. QIP가 부산대 내에서 시작했었잖아요. 부산대는 1년에 축제를 두번 해요. 가을에 열린 축제였었나, 김조광수 감독님이 오셨었어요. 아니, 김조광수 감독님이 오신다는데, 안갈수가 없잖아요. 아는 언니들이랑 같이 만나러 갔죠. 강의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어요. “부산에는 퀴어 커뮤니티가 없어요. 김조광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니까 김조광수 감독님이 “그럼 네가 만들어라. 그렇게 만드는거다.” 라고 말한 거죠. 그 질문을 한 사람이 QIP초대 회장님이에요. 이제 질문을 한다고 마이크를 건네 받았으니까 건네 받은 김에,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거죠. “그러면 부산대에서 퀴어 커뮤니티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저한테 연락주세요.” 그랬더니 저랑 같이 간 언니가 종이에 연락처를 적는 거예요. 알고보니 언니도 성소수자였던 거죠. 언니를 포함해서 그 이야기를 같이 들은 사람들이 주섬주섬 종이를 찢어서 연락처를 적고. 김조광수 감독님 강의가 끝난 후에 다같이 카페에서 만났어요. 그게 QIP의 첫 모임이었죠.

 

5. QIP는 처음 생겼을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었어요. 길원평 대자보를 첨삭한 사건도 그랬었고. 그래서 전퀴모가 서면으로 인터뷰도 하고, 두번이나 찾아가기도 하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 좋더라구요. 의욕 넘침이 지금의 부산 퀴어문화축제를 만든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전퀴모를 000이라고 정의한다면?

-전퀴모는… 그때 당시에 전퀴모의 느낌은 ‘숨통’이다?

 

6. 좋은 의미다. 이유는요?

-지금은 다르지만, 그때 당시 부산에 있는 퀴어 커뮤니티는 QIP밖에 없었어요. 어려움과 힘든 일이 있어도 QIP내부에서 해결을 해야 했었죠.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운을 북돋워주기도 했지만 모두 QIP 안에서만 일어난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전퀴모랑 만나면서는 ‘그래도 다른 지역에도 커뮤니티가 있기는 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산에서 QIP 활동 하면서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 하면서 숨통 트이는 기분이 들었어요.

부산에 가면 늘 신이 난다

7. 저희도 QIP를 만나고 나면 늘 기분이 좋았어요. 모두 에너지도 넘치고, 텐션도 높고. 정말 애정이 가는 곳이에요. 전퀴모 모임에 참여하면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요?

-너무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쉬웠달까요?

 

8. 맞아요. 정기적으로 만나는 퀴어 커뮤니티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부산에서 오래 활동을 하셨어요. 부산에서 열리는 퀴어 행사를 검색해보면 거의 모든 기사에 혜연님 이름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렇게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안그래도 가르치는 학생이 부산퀴어문화축제를 검색하다가 제 얼굴을 봤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웃음) QIP가 처음 생길 때는 전국적으로 ‘안녕하십니까’대자보 운동이 있던 시기였어요. 서울에서는 ‘성소수자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도 붙었었고, 그런 걸 보면서 부산에 없는 커뮤니티에 대한 목마름이 컸었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부산에 퀴어 커뮤니티가 없었는데, QIP가 생겼고, 창립멤버로 참여하게 되었죠.

부산 퀴어문화축제는 QIP가 대학 모임에서 부산 지역 모임으로 발전을 하고, 분위기가 달아 올랐을 때, 부산의 여러 연대 단체들과 함께 ‘부산에 퀴어가 있다는 걸 보여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QIP 구성원들이 부산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많은 관심과 힘을 보태게 되었지요. 

 

9. 그런데, 모든 사람이 ‘내가 사는 데서 퀴어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퀴어문화축제를 함께 만들지는 않아요!!

-(웃음) 저는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성소수자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도닥여주고 힘든 것 같이 짊어져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서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기도 하고요.

 

10. ‘퀴어를 만나고 싶어’라는 부분이 왜 여기 있어라는 걸로 확장하고 싶었는지가 궁금한거죠. 그리고 대학 동아리에서 부산퀴어문화축제까지 확장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고요.

-QIP를 처음 만들 때는 아까 말한 것 같은 개인적인 이유가 컸어요. 처음에 QIP가 했던 일이 길원평 교수의 대자보에 첨삭을 한 거였잖아요. 그 대자보를 보고, 부산대 내의 성소수자들이 꽤 많이 연락을 했었어요. 우리가 첨삭한 대자보가 신문에 실리면서 대자보가 기사로 나가면서 부산경남 지역, 다른 시민분들도 많이 QIP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몇년 동안은 끈끈하게 뭉쳤었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하고, 의지도 하고. 그런 공동체가 너무 좋았어요. 그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게 저한테는 컸어요. 그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여러 연대 단체들과 함께 만드는 부산 퀴어문화축제까지 퍼진 게 아닐까 싶어요.

 

11. QIP들어가지 않았으면 지금의 삶이랑 많이 달랐을 것 같나요?

-QIP에 안들어갔다면… 아마 좀더 빨리 대학을 졸업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하지만 QIP아니더라도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들어갔을 것 같아요. 하지만 QIP에서 만난 나의 동지들은 만나지 못했을 거고, 좋은 추억들은 없었을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