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퀴어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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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이야기/전퀴모 아카이빙

[전퀴모 아카이빙] 서울 토박이 시경의 대전살이-1

전국퀴어모여라 2021. 5. 12. 14:51

서울토박이 시경의 대전살이1

시경님이 참여한 전퀴모 행사와 후기

1. 대전에도 퀴어가 산다! 대전 퀴어들의 수다회 현장
2. 행성인 대전모임을 마치며
3. 2014년 봄, 이직과 함께 대전생활이 시작되었다
4. 전국 퀴어 모여라 '대전 산책'
5. 내년 대전 퀴퍼 콜?

1. 대전에서 전국퀴어모여라(이하 전퀴모) 행사 참여 전에 어땠는지 뭘 기대했는지 실제로 참여했을 때 어땠는지?

- 전퀴모의 서울 외 지역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 볼까 고민하면서 대전에서 ‘대전산책’을 기획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게 무모했지만 그 당시 대전에 있었던 레놀, 태진, 지희, 태희님이 있어서 말도 안되게 실행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전산책 왜 했지? 라는 질문에 아직도 답은 딱 하나에요. 서울에서 살다가 대전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대전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없다고. 외로울텐데 괜찮겠냐고요. 정말 없을까? 없어서 안 보이는 걸까, 있지만 나타나지 못하는 걸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하잖아요. 없을 리가 있나요. 대전에도 성소수자들이 산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서로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덜 외로워질 거라고, 또는 덜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대전에 성소수자들이 없는 듯 보였던 이유는 ‘성소수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텐데, 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공공공간으로 운영되는 카페를 빌려서 대놓고 ‘전국퀴어모여라’를 붙였거든요. 사람들이, 올까? 여기까지 나와줄까? 오히려 더 숨어버리게 만들면 어떡하지?

그 건물은 대전의 공공기관이 함께 쓰는 곳이었고, 번화한 원도심이었던데다가 심지어 저는 회사에서 업무상 만나는 사람을 마주치기까지 했었으니까요. 그 순간 위축되었었거든요. 아, 만나버렸네. 별일... 없겠지?

별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작정 오픈했습니다. 대전에 있었던 우리들은 직접 현장을 준비했고, 광주에 있었던 재경은 오픈채팅으로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던 걸로 기억해요. 알음알음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 둘 행사공간으로 모여들던 때, 한 두명만 만나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는데 테이블을 꽉 채워 버렸을 때, 두근두근했어요. 마이크를 잡은 멤버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왠지 좀 떨려보였고 사람들을 맞이하던 저도 한 명 한 명 눈 마주치며 인사했던 것이 이상하게도 처음 경험하는 일처럼 각인되어 있어요.

몇 가지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시간이 흐르고, 뒷풀이도 하고, 단톡방 하나가 만들어진 채 다들 헤어졌습니다. 그 멤버들로 두 번째 대전산책을 열지는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띄엄띄엄 소식방처럼 운영하다가 지금은 흩어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가 받은 에너지는 엄청났던 것 같아요. 대구에 가서 비슷한 행사를, 대전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했거든요. 비록 저는 회사일 때문에 대구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그 행사가 대전 멤버들에게 굉장히 소모적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활동가로서의 활동은 아니구나,를 확인했달까요.

아무튼, 피드백 겸 받은 설문조사에 누군가 행사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숨통트임’이라고 적어놓고 갔어요. 저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걸 보면서 생각해요. 나에게, 또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모임을 만들었고 확인하고 싶었던 걸 확인했다고요.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반드시 계속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안도감과 연대감을 느끼고 삶의 어떤 순간은 오로지 그 안도감만으로 버텨낸다고 믿어요. 그걸 만들어 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준비했었던 대전 산책


2. 당신이 만들어 가고 싶은 전퀴모는 어떤 모습인가요? 또는 전퀴모와 함께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2021년 현재로서는, 서울 외 지역에서 위에서 말한 ‘우리 같은’의 범위를 넓혀가고 싶어요. ‘퀴어’의 본래 의미, ‘다름’에 집중하고 싶다고 할까요.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널리 쓰여왔지만 그건 게이, 레즈비언 등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시절의 용례라고 생각합니다.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자의 취향과 정체성에 있어서 더 이상 누군가를 ‘취향이 이상하다’ 또는 ‘정체성이 이상하게 형성됐어’라고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 상식인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아직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다름’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것이다, 라는 모토를 전퀴모를 통해 좀 더 확장시켜 보고 싶어요.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것. 서로 다른 사람들이 본래 생긴대로 공존하는 것. 그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되는데 기여하는 일들을 전퀴모에서 해보고 싶어요. 굉장히 광범위하지만 전퀴모로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전퀴모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 / 활동의 권태기가 있었는지?
- 예전에는 변치 않는 것이 변하는 것보다 우월하다는 막연한 가치판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고, 사람도 변치 않는 사람이 진국이고 뭐 그런 것들요. 그런데 꽤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생각이 바뀌는데 전퀴모 활동들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취향도, 우리의 삶도 매 순간 변화하고 변화를 멈추는 순간 오히려 도태되고 정체된다고 생각해요.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도 그랬어요. 대전활동은 즐거웠지만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썼거든요. 회사일도 아닌데 번아웃이 왔습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였어요. 그 때 전퀴모를 떠나지 않고 ‘나는 달라졌어.’라고 대표인 재경에게 신호를 보냈어요. 이거 버거워, 이거 힘들어. 나 이제 그 때랑 달라. 의무감으로 활동하고 싶지 않아. 그 때 재경과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우리 이거 재밌자고 시작한 거잖아. 그럼 재밌어야지. 즐겁지 않은 건 원치 않아.’ 그 덕분에 전퀴모를 떠나기 보단 거리를 둘 수 있었고, 지금은 전퀴모에서 성소수자 활동 이상의 것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움직여 볼까, 하는 중입니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