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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퀴어 모여라
부산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사는 평범한 게이 모리킴의 대전 여행기 본문
부산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사는 평범한 게이 모리킴의 대전 여행기
모리킴(전국퀴어모여라)
모리킴입니다. 성소수자 운동판에서 요즘 가장 HOT하다는 전퀴모에서 4월엔 대전광역시에 다녀왔어요. 개인적으로 1년 전에 일주일 정도 대전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참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라는 생각을 했더랬어요. 서울과 달리 폭이 정말 넓은 보도, 평평한 지형, 자전거 타는 사람들. 뭔가 여유로운 이곳의 매력 때문에 나중에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된다면(과연 그런 선택권이 내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전에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어요.
올해 전퀴모 활동계획을 세우던 중에 대전에 행성인 회원이 우리가 아는 사람만 두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옳다꾸나! 부산 다음으로 갈 곳이 대전으로 정해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요. 전퀴모 대전 특파원 코멧님의 현장 섭외도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대전에 내려가서도 만났던 레놀도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하니, 별로 걱정할 것이 없었어요. 코멧님의 대전 친구 J님도, 레놀의 친구 뼈나님도 오신다고 하니 우홍 사람도 많고 참 좋구나. 역시. 아는 퀴어의 아는 퀴어를 이어나가다보면 온 세상 퀴어들을~ 다 만나고 오겠네~♬
재경과 서울역에서 롯데리아 아침세트를 사서 기차에 탔어요. 저는 교양을 갖춘 게이답게 독서를 하며 대전으로 향했답니다. 우린 돈이 없으니까 KTX 따위는 타지 못했어요. 안타까우시다면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후원을!
대전역에 도착하니 플랫폼에 레놀이 마중을 나와 있었어요. 뒤에서 목덜미를 후려잡는데 깜놀함. 레놀은 재경의 팬이에요. 그래도 부치라고 멋있다나. 대전 역에 내려서 역 앞에서 담배피는 재경을 보며 담배 피는 모습도 멋있다고 난리였어요. 그러던 중에 코멧님이 도착하여 레놀과 첫 주민간 상봉.
대전역 앞의 꽃시계. 이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 쯤에 넣을 사진이 없어서.
수다회를 진행하기로 한 곳은 대흥동의 '느린나무'라는 이름의 가정집 같은 카페. 가는 길에 대전의 명물 성!심!당!이 있어서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들어갔어요. 그리고 펼쳐진 것은 은혜로운 빵의 향연.
본점에선 빵과 샌드위치를 주로 팔고 그 옆에는 케익만 파는 성심당 케익 부띠끄가 따로 있었어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한 없이 펼쳐진 케익을 통해서일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 없음)
코멧님이 전퀴모를 위해 케익을 사주셨어요. 케익을 들고 수다회 장소로 이동~
카페가 골목 안쪽에 있어서 위치를 찾느라 잠시 방황을 했지만 잘 찾아들어갔어요. 마치 옛날 할머니 집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카페였어요.
수다회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수다회 글을 본 뼈나님은 대전퀴어모임이 아니라 대전부동산모임인 줄 알았다며. 그래서 재밌었던 거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부동산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어요. 호호.
수다회가 끝난 후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대전은 면이 유명하대요. 그래서 칼국수와 김밥을 먹으러 감. 그러나 맛은............ 칼국수와 김밥 맛이었어요.
원래는 이 타이밍에 카이스트 쪽으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갈 생각이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벚꽃 구경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은 코멧님 집에 짐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려고(이미 이때부터 벚꽃 구경은 물 건너 간 것) 택시를 타고 코멧님 집으로 향했어요. 코멧님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택시 기사님은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무지 애쓰셨어요. "앞에 앉으신 분은 교수님하시면 딱일 것 같아요", 그날이 마침 월식이 있는 날이어서 우리끼리 월식 얘기를 했더니 "과학자들이세요?", "예술 하시는 분들인가?"하며 계속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하셨지만 부치의 커트머리와 게이의 끼스러운 말투를 많이 접해본 적은 없으신지 내릴 때까지 알아차리진 못하셨어요. 다음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땐 빨리 알아차리시길^^
코멧님 집에 들어가자마자 재경은 삼십 분만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버렸어요. 참 아저씨^^ 남은 코멧님과 레놀과 저는 레놀이 가져온 시타델(보드게임)을 했어요. 열어놓은 창문으론 빗소리가 들려와서 핸드폰으로 유튜브에서 벽난로 소리를 검색해 틀었어요. 참 운치 있었다능. 호호. 열심히 시타델을 하다가, 삼십 분이 지나서 재경을 깨우러 갔더니 역시나 조금 더 자겠다며 삼십 분을 더 잤어요. 뼈나님은 그 즈음 도착했어요. 우연히 들어간 시골에서 미아가 될 뻔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 대전으로 오셨던 것이죠. 힘들어보였어요. 자기소개를 하고 저녁겸 술을 마시러 비도 오고 하니 막걸리+파전을 먹으러 갔어요.
뼈나님은 배가 고프면 포악해진다.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며 새로 합류하신 뼈나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분....... 뭐랄까..... "전통적인" 부치의 면모를 놀랄만큼 잘 갖추고 있는 분이었어요. 자신도 모르고 있던 부분을 저희가 확인해드리고 뼛속부터 부치인 이 분의 닉네임을 "뼈나"로 지어드렸어요. 재경은 부치컷을 잘 하는 미용실을 알려드렸고, 뼈나님은 매우 흡족해하셨다는 훈훈한 뒷 이야기^^
좀 늦었지만 대전의 퀴어 플레이스에 가기로 했어요. 레놀이 소개해 준 게이 술집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왠걸. 이 곳은 평범한 게이 술집이 아닌......... '퀴어' 술집이었어요. 게이 레즈비언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두가 한 곳에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게이바 L바 따로따로 있는 것에 적응되어 있던 우리는 너무 놀랐어요. 재경은 "화장실 가면서 런웨이 걸을 때 누구를 스캔하고 누구를 스캔하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며 그 당황스러움을 멋지게 표현했어요. 너무 당황하여 직원분께 "다른 지역에서 와서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섞여 있는지 좀 설명 해 주세여"하고 물으니 얼마 전에 L바 하나가 문을 닫아서(아마 이 곳이 유일한 L바였나 봄) 레즈비언들도 이 곳으로 오고 있다고 설명해주셨어요. "어떡해요,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요. 다 한 가족인데"라고 하셨어요. 좀 감동 받았어요.
"어떡해요,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요. 다 한 가족인데"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서울에서는 L바 하나가 문을 닫아도 게이바에 L들이 오진 않겠죠. 퀴어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생기고 유지되는 것도 서울과는 분명 다른 조건 속에서 진행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레놀과 뼈나님은 레놀 집에서 묵기로 해서 나머지 셋과 퀴어바에서 헤어졌어요. 재경과 코멧님과 저도 코멧님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좀 먹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요.
<다음 날>
다음 날은 식목일이었어요. 나무를 심는 날이죠. 우린 대전에 "퀴어나무"를 심기로 했어요. 대전의 한복판에서 퀴어의 기운을 퍼뜨려 동성애를 조장하기 위해서죠. 나라에서도 나무를 심으라고 독려하고 있었어요. 이 사진을 보시죠.
나라에서도 우리가 나무를 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심었어요. 대전의 한복판인 곳에. 오호호호홓호호호홓호홓호호. 장소는 호모포비아들의 훼손 우려 때문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만 아는 그 곳에! 퀴어나무는 지금도 광합성+호흡 콤보를 통해 퀴어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그 향기가 머리를 맑게 한다고 하네요.
끼스러운 곡괭이와 모종삽으로 깨작대며 공공장소에 무단 식수하는 퀴어들
무단 식수 완료.
이렇게 대전에서의 퀴어들의 만남은 끝났어요.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죠. 일주일 후 대전에 사는 레놀과 코멧님이 만나 퀴어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셨다고 해요. 이렇게 인증샷도 보내주시고. 호호. 이름은 '히키코마리'입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대전 땅에 뿌리를 박고 퀴어의 기운을 퍼트리고 있는 히키코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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