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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2014년 봄, 이직과 함께 대전생활이 시작되었다

전국퀴어모여라 2015. 4. 21. 21:15

2014년 봄, 

이직과 함께 대전생활이 시작되었다

코멧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 년이 넘도록 서울에서 살았다. 강북의 대중교통 노선과 이런저런 골목들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고, 보도블록이 깔리기 전 흙먼지 자욱한 인사동과 주말이면 한산해서 산책하기 좋았던 삼청동을 구체적으로 추억할 수 있는 ‘서울사람’이었다.


혼자 살았던 적은 있지만 서울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한 건 처음이다. 대전으로 오게 된, 그러니까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사람과의 관계를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싶었던 욕심에 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보호받을 수 없으니,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는 대전에 온 지 얼마 안되어 힘들어졌다.


그러니 내게 대전은 이래저래 외롭고 쓸쓸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보수적인 사내에서 이성애중심적 가치관으로 가득한 동료들의 대화에 편입되고 세계 최고의 마초 같은(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너무 괴롭다!) 상사들에게 적응해야만 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딱히 의지할 사람도 없고 숨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알게 된 A와 가끔 만났고 그 즈음 <전국 퀴어 모여라>가 나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 시간 자고 종종 주말 근무까지 해야 하는 일상인데도 전퀴모 맞이 준비를 하겠다고 냉큼 대답한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답답했었던가 싶다.


그런데 이건 예기치 못한 경험이었다. 수다회를 진행할 모임 장소를 물색하고, 집 대청소를 하고, 벚꽃 만발한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낮술 마실 생각을 하면서부터 이 도시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회식 하러 가던 길, 출장 왔던 곳, 회의했던 카페, 서울이랑 비슷비슷하고 별 특징 없어 보이던 시내를 구석구석 살피게 된 것이다. 퀴어한 공간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고,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구미 당기는 풍경들이 보였다.


수다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궁금하기도 했지만(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퀴모를 기다렸던 일주일 남짓의 퇴근 후 저녁과 한 번의 주말도 그에 못지 않게 즐거웠다. 역에서부터 시내까지 걸어보고 꽃이 흐드러진 길을 골라 다니면서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던 카페들을 기웃거렸던 시간. 그저 볕이 좋았던 그 저녁들과 다음 주를 기대하며 잠시 즐겼던 햇빛만으로도 충분했다. 바람빠진 고무공처럼 잔뜩 구겨져 있다가 처음으로 몸과 마음을 탈탈 털어 공기를 불어넣는 느낌이었달까.


그건 타지에서 체감한 ‘우리’라는 어떤 공감대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만날 생각에 약간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주파수 열어놓고 기다리는 ‘우리'들이 꽤 많다는 것은 알지만 직접 마주하고 앉아 이런 저런 사는 얘기들 나눌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애인 구함, 이 아니라 동네 친구 구함. 가끔 맛있는 것 먹고 수다나 떨고 오후에 같이 책이나 좀 뒤적거릴 수 있는 퀴어 친구 구함. 없는 줄 알았더니 웬걸, 주변에 차고 넘쳤던 우리들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흐리고 스산한 날씨같던 대전이란 도시가 지금은 조금 달라보인다. 개인적인 감상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누군가가 이 도시에, 또 전국에 여기저기 많을 테니까. 전국 곳곳을 찍고 다니는 전퀴모의 바지런한 활동이 이렇게 빛을 발한다.


코멧님의 손이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