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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아카이빙]부산에서 만나 다시 서울에서 만난 앤드님

전국퀴어모여라 2021. 7. 15. 12:19

부산에서 만나 다시 서울에서 만난 앤드님 

앤드님이 참여한 전퀴모 행사와 후기 

1. 부산에서 전퀴모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  
2. 부산에서 만나 더 특별한 전국퀴어모여라
3.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부산팀을 만나다!

 

앤드님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2월이었다. ‘레즈비언 생애기록 연구소’ 부산팀에서 옥상별빛님, 벗들님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생애기록 연구소’라는 이름답게 매 회의때마다 회의 기록을 꼼꼼하게 남기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만난 날 세 분은 멋쩍어 하며 “우리처럼 작은 모임을 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만, ‘퀴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만나고, 고민을 나누고, “뭔가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2년이라는 시간동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었다. 

 

모임은 2016년 2월이었고,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QIP’의 혜연님도 함께 만났다. 지금도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돌아보면 2016년 즈음은 퀴어를 포함한 소수자들에게 마음이 많이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서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더 소중한 게 아닐까? 5년 만에 앤드님을 만나 그날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추억돋는 웹자보


1. 2016년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볼까요?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요? 그때 ‘왜 우리처럼 작은 모임을 만나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신 게 기억나요. 

- 맞아요. 사실 저희가 세 명밖에 안 되는 모임이고, 생애기록 모임이지만 아무도 생애기록을 잘 하고 있지 않았거든요.(웃음) 다른 모임을 만나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만나보니 반갑고 재밌었고요. 

 

전퀴모에서는 당시에 QIP외에 부산의 다른 모임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검색을 하다 찾았는데, 회의록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길래 신기했죠.

- 사실 부산 생애기록모임은 지금은 와해된 셈이에요. 원래 모임이란게 있다가 사라지다 하는 거지만 전퀴모와 만나서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으면 정말로 사라지는 거니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같이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인사도 나눴던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연락도 주고 받고.

 

지금 돌아보면 전퀴모와의 만남에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요?

- 아쉬웠던 점을 굳이 꼽자면 일회성이었다는 점? 물론 와해되긴 했지만 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죠. 2년에 한번이라든지. 그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2016년 2월에 처음 만난 이후로도 전퀴모랑 또 만났잖아요. 그해 5월에 부산이 아닌 제주도에서 뵀었죠? 

- 맞아요. 성소수자부모모임 정기모임이 제주에서 열린 날이었죠. 그때 힘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그때만큼 부모모임에 관심이 많지 않지만, 그때는 기독교인인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다는게 잘 상상이 안됐었거든요. 또 교회에서 동성애를 비난하는게 너무 강하니까 그런데서 오는 마음의 불편함이 컸어요. 근데 그날 부모모임에서 만난 부모님들 중에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셨고, 그 중에 “자기 딸한테 교회에서 사과할 때까지 교회에 다시 안나갈 거”라고, 그렇지만 자기 신앙 생활을 혼자 계속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그런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에 힘을 받았고 좋았어요. 그때 뵙던 부모모임 분들이 이후에도 방송에도 나오시고 그러는 모습들 잘 지켜보고 있고요. 전퀴모와의 인연으로, 좋은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앤드님과 처음 만났던 날!

 

그 후로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부산팀은 어떻게 되었나요? 와해된 셈이라고 하셨는데.

- 모임의 주축이었던 벗들님이 2017년에 서울에 가시게 되면서 저만 남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었던 성경공부 모임만 운영되다가, 저도 2018년에 올라오면서 그것도 없어지면서 조용히 사라지게 된 거죠. 서울에도 생애기록모임이 있기 때문에 저는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서울팀에 들어가서 같이 활동을 했어요. 근데 모임이 있는 토요일이 일하는 시간이랑 겹쳐서 그 모임도 안 나가게 됐죠. 대신 벗들님이 서울에 와계시니까 벗들님하고 서울 생애기록모임 하시는 박김수진님하고 그렇게 셋이서는 서울 오고 나서 두세번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군요. 저는 성경공부 모임이 부산에서 만들어졌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여러 곳에서 퀴어들이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때만해도 별로 없었던 때라서 잘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엇어요. 

- 그때도 소규모였어요. 저 포함해서 세 명이었고, 퀴어와 성경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랬죠. 


2.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부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서울에 다시 오시니까 어때요?

- 제가 부산에 5년 있었고 서울에 2018년에 왔으니까 이제 3년이 됐는데, 처음 왔을 때는 서울이 너무 많이 변해있다는 거? 뭔가 5년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어서 좀 생소했는데, 이제는 또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부산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바쁘게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점이요? 일이 많아지셨나요?

- 일도 많아졌죠. 생활 비용이 부산보다 서울이 많이 들어가니까, 뭔가 결국에는 똑같은 것 같은데 일은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뭔가 남는 건 없는데 바쁜 느낌?

 

2016년에 자기소개하실 때  ‘꼭 서울에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하셨는데.

- 그때는 그 고민이 굉장히 강하게 있었죠. 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 서울로 가려고 하고, 되게 중심이 되려고 하고, 메인 스트림이 되려고 하고 하는게 너무 싫었어요. 그 흐름에 내가 역행해도 괜찮지 않을까? 혹은 역행해야만 하는게 아닐까? 그게 내 삶에 의미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근데 그 후에 생각이 좀 바뀌긴 했죠. 저 혼자 이런다고 제 인생이나 제가 몸담고 있는 예술계가 크게 변하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럼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뭐였어요?

- 일단은 집 문제가 좀 있었고,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서울에 더 많아서, 궁극적으로는 그 이유가 컸던 것 같아요. 선택을 한 거죠. 부산에 있으면 생활비가 적게 들어가긴 하지만 일자리도 적은 편이고, 서울에 있으면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일할 기회가 많잖아요? 일할 기회가 더 많은 곳으로 간 거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 고민은 서울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진짜 많이 하는 고민인 것 같아요. 

- 제가 작업은 잘 안하고 있지만 원래는 예술 분야에서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산에 갔던 거거든요. 대부분 예술 작업하는 사람들이 문화 재단 지원사업 같은 사업에 의존해서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경제적 활동도 많이 하는데, 그런 재단 지원 사업의 인프라 자체가 부산엔 부산문화재단 밖에 없어요. 전국 단위의 예술인복지재단 같은 곳에서 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서울에 오면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고양문화재단 등등 많으니까. 아무래도 다양한 기회 많죠. 근데 제가 느끼기에 꼭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부산이 일자리가 되게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부산에서 만난 다른 분들도 다 그러시고.

 

저도 광주에서 활동하니까 다른 지역의 상황도 알아보곤 하는데, 부산에서 그 문제를 돌파해보려고 예술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예술하는데 광주보다는 나은 도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 만약에 제가 부산 사람이고 거기 분들하고 정말 친하게 섞이려고 노력을 했더라면 계속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그런 모임을 찾았을 수도 있겠고. 근데 부산에 있는 동안은 작가분들 커뮤니티보다는 퀴어 쪽 분들과 좀 더 깊이 있는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이유는요?

- 작가분들이 있는 모임에서는 좀 대화를 해보면 젠더 감수성이 제가 느끼기엔 불편한 점이 있어서 ‘아 이 공간은 내가 편안하게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리고 페미니즘 모임에서도 활동를 좀 했었는데, 거긴 그런 부분에선 편했는데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거기서도 그렇게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게 되고. 

 

3. 지금 사시는 곳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지금은 망원동에서 1년째 지내고 있어요. 저는 서울에서는 조금 외진 곳에서 태어나고 컸어요. 그래서 망원동에서 느끼는 건 교통이 참 편하다는거? 또 망원시장이 가까이 있어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점 정도인 것 같아요. 근데 집이 정말 책상만해서, 오늘도 그 책상만한 집에서 침대에 무릎을 부딪혔거든요.(웃음) 그런 건 좀 안 좋고요. 

 

근데 망원동에 퀴어들이 많이 살지 않나요? 제가 아는 퀴어만 엄청 되는데.

- 제가 요즘 일만 하고 퀴어 커뮤니티 활동을 안 해서 잘 모르네요.

 

아, 요즘은  활동하는 퀴어 커뮤니티가 없으신 건가요?

- 네. 현재는 전혀 없죠. 주말에도 거의 일하고, 일요일에는 뻗어있고 그래서. 음… 그리고 나이가 점점 많아져가면서, 낄 곳이 없다고 느끼기도 해요. 자격지심 같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뭔가 늙수구레가 끼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생애기록모임 같은 또래 모임 나가면 되긴 하지만. 토요일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시 문을 두드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앤드님의 동친 등장을 기원하는 전퀴모 

 

4. 빠른 시일 내에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웃음) 그럼 앤드님이 속하고 싶은 커뮤니티는 어떤 곳이에요? 마음껏 상상해본다면, 그 커뮤니티가 갖춘 가장 중요한 특징 3가지는?

- 너무 예민하지는 않은 곳이면 좋겠다는 거? 정치적인 올바름이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너무 중시해서 사람들까지 놓치는 그런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요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예민한 것도 필요한데, 친절함도 같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친절하기 위해서 내 그릇도 더 키워야 할 것 같고요.

- 맞아요.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면 되는데, 너무 공격적으로 하시는 분들을 꽤 몇 번 봤어요. 예전에는 퀴어모임에 가면 그 어느 모임보다 더 마음이 편안한 모임이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퀴어 모임에 가면 ‘아, 이런 말은 요즘에 쓰면 안되는 말인데’하면서 오히려 조용하게 되는, 더 불편해지는 지점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좀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할 수 있는 모임이었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는, 나이로부터 좀 자유로운 곳?(웃음) 몇살이든 다 웰컴하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머지 한 가지는 다음에 이야기 할게요. (웃음)

 

- 여운을 남기며 인터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