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퀴어 모여라

다이내믹 부산의 퀴어들 마늘&보라 본문

전퀴모 이야기/전퀴모 아카이빙

다이내믹 부산의 퀴어들 마늘&보라

전국퀴어모여라 2021. 9. 3. 15:01

다이내믹 부산의 퀴어들 마늘&보라

마늘&보라님이 참여한 전퀴모 행사와 후기 

1. 길원평 교수를 무찌른 영남의 샛별!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동아리 'Queer In PNU'를 만났어요!
2. 광주 (소프트)부치, 부산 끼순이들을 만나다.

마늘&보라님이 활동을 시작한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동아리를 서면 인터뷰했던 2014년에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은 처음이라고 생각했었다. 부산에서 담당자가 살고 있는 서울까지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기회가 있으면 꼭 만나야지 하고 처음 만난 것이 2015년, 그 이후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산대 성소수자 동아리는 현재의 QIP가 되었으며, 마늘&보라님과의 사이는 돈독해져 갔었다. 부산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중 두명인 마늘&보라님을 만나 보았다.

 

요즘 두 분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마늘: 저는 부산에 여전히 살고 있고요. 일은 다니다가. 지금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보라: 저도 계속 부산 살고 있고요. 부산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전퀴모가 QIP를 처음 만났던 게 2014년 10월이더라고요. 벌써 7년 전이어서, 그때의 기억을 좀 되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 ‘공간 초록’이라는 공간에서 처음 만났었죠?

마늘: 맞아요. 그 공간이 지금은 없어졌을 거예요

 

슬프게도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참 좋았는데

그렇군요. 그때 저희가 ‘부산대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나려고 연락을 드려서 두 분을 만났었죠.

마늘: 그때도 ‘인권’ 동아리였어요. 부산대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 그 인권 때문에 저희가 얼마나 피터지게 싸웠는데.

 

그랬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즈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부산에서 QIP가 생기고, 광주에서도 대학 퀴어 모임이 생겼었거든요. 그래서 궁금한 점들이 많아서 한번 만나보자고 제안을 드렸던 거죠. 전퀴모에서는 재경, 민수, 종윤, 혜성이 왔었고요. 모임을 한 2시간하고 뒷풀이를 6시간 정도 했던 기억이 나요. 

마늘: 저는 술 먹으러 안 갔던 걸로 기억해요. 아마 그때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서 다음 날 해장까지 하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던 기억이 나요. 기억이 좀 되살아나셨나요?

보라: 네. 조금씩 기억이 나네요.

 

마늘: 저도요.


좋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려볼게요. 지금 돌아봤을 때, 그때 전퀴모와의 만남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궁금해요. 당시에 처음 전퀴모를 만날 땐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어떠신지.

마늘: 당시에 전퀴모는 그냥 연대단체 중에 하나였어요. 그때 여러 곳에서 QIP에 주목을 좀 해줬던 것 같아요.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생긴 신생 퀴어 단체이고, 저희가 그때 한창 열심히 활동하던 때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인터뷰 요청도 되게 많이 왔었고, 저희들이 진짜 미친듯이 나가서 계속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나요. 여러 연대 단체들과 인터뷰를 하는 게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군요. 당시엔 퀴어 동아리 자체가 별로 없기도 했죠. 그래서 부산에서 퀴어들이 모이는 움직임이 보이니까 다들 만나보고 싶어했나봐요. 보라님은요?

보라: 저는 사실 그때 정말 QIP에 들어온지 진짜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완전 벽장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자리만 채워라”하면서 무슨 기획부장을 떠맡게 됐는데, 갑자기 무슨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또 가서 쫄아있었던 기억이 나요. (웃음) 가기 싫은데 “그냥 놀고 오는 데다”라는 말에 속아서. 그때는 연대단체고 뭐고 뭔지도 몰랐고, 그냥 QIP 활동이랑 똑같이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QIP도 저한텐 아직 낯선 단체였기 때문에.

 

마늘: QIP는 어땠어요? 전퀴모에게 QIP는 어떤 이미지였는지 궁금해요. 우리도 질문 받았으니까 하나 질문해 보고 싶었어.(웃음)

 

엄청 에너지가 넘치고 의욕적이라는 느낌? 다른 대학모임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던 때였는데, QIP는 뭔가가 달랐어요. ‘역시 부산인가봐’, ‘제 2의 도시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건가봐’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길원평 교수 주장을 첨삭하는 대자보를 쓰는 활동이나, 드랙프롬 같은 활동이 특히 좋았어요. 자기들끼리 정말 즐기면서 재밌게 활동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에너지가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QIP가 학내 동아리에서 지역 단체로 정체성을 확장했을 때는 ‘대학 동아리로만 남기는 아까웠는데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마늘: 그때는 젊었죠. 21살, 22살 때. 그 길원평 글 첨삭 대자보 아이디어 제 아이디인 거 아세요? 제가 QIP에 굉장히 많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이슈 몰이를 했던 사람입니다. (웃음)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거 재밌게 열심히 하는데 그게 되게 멋있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마늘: 보라야, 우리가 이렇게 멋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멋있었다. 내가 방구석에 이렇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웃음)

 

그런 에너지는 다 어떻게 나온 걸까요? 그때가 길원평을 비롯한 혐오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였는데, 그런 시기적인 상황과 QIP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가 잘 맞아떨어졌던 걸까요?

마늘: 맞아요. 그런 혐오공세에 더이상 참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에 비하면 약간 감당이 안되는 포텐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지금은 이제 많이 잠잠해진 호수 같지만, 저는 좋아요. 


그럼 두 분은 지금도 QIP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시나요?

마늘: 속해 있기는 한데, 요새 QIP 내부적으로도 활동이 뜸하고 저도 활동이 뜸한 상태라 예전만큼 열심히 활동하진 않고 있어요. 다만 뭔가 이슈가 있으면 서명 운동에 참여하거나, 관련한 논의들을 전해 들으면서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고 하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보라님은요?

보라: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은 그쪽으로 가 있는 것 같은데, 먹고사니즘에 치여서 마음만 가 있는 것 같아요. QIP 사무실에 잘 찾아가지지도 않고. ‘지금 마당에 풀 많이 자랐을 텐데’ 생각만 하고 베러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보라님 말씀대로 두 분 다 마음은 여전히 QIP 활동이나 퀴어 활동 쪽에 남아있으신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활동도 있으신가요? 전퀴모와 함께하는 활동이면 더 좋고요. 

마늘: 제가 큰 자원은 아니겠지만, 제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최대한 저를 쓰시라고 하는 편이에요. 뭐든 제가 그 이슈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면 불러주시면 갑니다. 인터뷰하고 얘기하고 담소하는 그런 자리엔 언제든 참여하고 싶어요. 

 

보라: 저는 그냥 좀 가벼운 단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회칙이나 회비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구분짓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물론 그런 게 필요한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문턱이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대단한 기획의 행사나 활동 없이도, 그냥 모이기만 해도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활동이 일처럼 느껴지거나, 어렵다고 느껴지면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없잖아요? QIP가 부산의 유일한 퀴어 공간이니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예를 들어 만약에 인터뷰를 하더라도, 단체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게 아니라 범일동 돌아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 붙잡고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고 있어요.

 

의미 있는 노는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보라: 의미 ‘없는’ 노는 행사를 원합니다. (웃음) 모인다는 것만이 의미인.

 

좋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두 분 다 지금 부산에 계속 사시잖아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부산에 계속 사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마늘: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지박령인가? (웃음) 뭔가 묶인 것 같은 느낌은 아닌데,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사실 겁부터 나거든요. 타지로 가면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터전이, 이미 일궈낸 것들이 다 조금씩 옅어지는 상태로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게 좀 걸리는 것 같아요. 이미 일궈왔던 것들이 저한텐 값지고, 지금의 삶에도 만족하며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생각은 좀 있어요. ‘서울 가면 더 많은 잘생긴 남자들이 있을 텐데’, ‘나 좋다는 사람들은 왜 다 서울 살고 경기도 사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해요. (웃음) 그래도 삶의 터전으로서는 부산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나.

 

보라: 그래서 제가 최근에 제주도를 갈까 한참 진짜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거든요. 근데 아직까지는 돈이 안 돼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잠시 다른 이야기로 빠진 것 같은데요(웃음), 다시 인터뷰 질문으로 넘어와서, 예전에 전퀴모와 처음 만났을 때 말고, 지금은 부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보라: 제가 처음 QIP에 들어갈 때는 부산대 말고는 퀴어 동아리가 없어서 동아리가 너무 소중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보면 쉽게 생겼다가 또 쉽게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또 없어지기도 하는 게 퀴어들이 커뮤니티를 만드는게 훨씬 쉬워진 것 같아서 이런 역동도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부산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 단체 대표가 ‘트랜스젠더는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물론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답답하죠.

 

마늘: 저는 과거에는 부산은 되게 팍팍하고 성소수자들이 진짜 발 붙일 틈도 없는, 한 줌 QIP가 진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물론 더 있긴 했을 거예요. 커뮤니티도 있고 범일동, 서면에 알음알음으로 커뮤니티가 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인권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는 없었으니까요. 근데 그 후에 QIP도 생겼고, 부산의 여러 대학 내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생기는 모습들도 보였고, 또 부산퀴어문화 축제도 2회나 진행을 했잖아요? 또 지금은 홍예당에서도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하고 있으시고. 그런 식으로 퀴어들이 퀴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지역이 된 것 같아서 좋아요. 약간 뿌듯한 마음도 있는데, 과거에 우리가 QIP에서 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게 아니라, 조금일진 몰라도 씨앗이 되고 발판이 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요즘은 부산에서 퀴어 단체가 아닌 곳에서도 퀴어 행사를 자발적으로 열기도 하더라고요. 망미동 ‘책방 한탸’나 개금의 ‘책방 밭개’ 같은 서점에서 최현숙 작가님이나 김비 작가님과 함께하는 행사를 열기도 하고, 특히 김비 작가님은 양산에 사시는 지역 작가이시다보니 여기저기서 많이 모셔서 글쓰기 수업 같은 것도 열고. 그런 변화 되게 좋아 보여요. 퀴어 단체에서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그런 행사가 열린다는 게.

마늘: 다이나믹 부산이거든요. (웃음)

 

다이내믹 부산 


그럼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마늘: 그때 당시에 활동하셨던 분들은 대부분 다 지금은 밥벌이를 위해서 자리를 잡으셨고요. (웃음) 알음알음으로 근황을 듣기도 하고, 또 많은 퀴어들의 통신 매체인 트위터를 통해서 듣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대부분 다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렇게 저렇게 들려오는 소식들 들으면서 ‘아 안 죽고 살아 있구나’ 이 정도 확인하는 거죠. (웃음)

 

어떤 느낌인가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동문’ 같은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애틋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마늘: 그렇쵸 애틋함은 다 있죠.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항상 있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제 마음도 좋고. 애써서 소식을 알리거나 하진 않는데, 다들 서로의 안부를 듣고는 있는 것 같아요. 

 

보라: 저는 웬만하면 연락을 하고 사는 편인 것 같아요. ‘내 친구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겐 그냥 정말 뜬금없이 한 번씩 연락하거든요. QIP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창들을 생각할때보다 훨씬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동창 소식을 들을 땐 ‘아 그랬구나’하고 말지만, QIP 사람들 소식을 들을 땐 ‘잘 돼야 할텐데’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우리 좀 행복하자’하는 마음.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퀴어 커뮤니티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속하고 싶은 퀴어 커뮤니티의 특징 세 가지를 꼽아본다면?

마늘: 다양성. 정체성 자체도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뭐 게이 여기 이렇게 크게 한 덩어리, 레즈비언 한 줌, 트랜스젠더 점 하나 탁 찍고.(웃음) 그러지 말고 진짜로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스펙트럼 상에 놓여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둘째로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실제로 모일 수 있는. 예를 들면 그냥 카페라도 하나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카페 사장님이 커뮤니티 대표를 하면 되겠네요. 

마늘: 그래도 될 것 같고, 뭐 유치원 원장님이 애들 다 하원시키고 유치원에서 모여도 되겠죠. (웃음) 사실 뭐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나 시간을 적절히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될 것 같아요. 일단은 딱 떠오르는 건 그 두 가지예요. 나머지 한 가지는 잘 안 떠오르네요.

 

근데 QIP도 사무실 있지 않나요?

마늘: 네 있어요. 사무실도 있고, 정체성도 굉장히 다양하죠. 근데 그런 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의 재정이 뒷받침 되는거. 사실 어떤 단체든 운영을 위해서는 못해도 한 명이 상근직으로 그 단체의 전반적인 업무들을 보는 실무를 해야하는데, 지금 QIP는 그 사람의 급여를 3개월치 주고 나면 아무것도 없거든요. 저는 이런 재정적 뒷받침이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QIP에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 번아웃이 오고 이후에 활동을 재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활동과 생계를 병행해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QIP라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생계가 유지가 되어야 되는데, 생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QIP에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것들을 다 해내다 보면은 본인의 생업이 불안정해지는 거죠. 그래서 단체에서 실무자의 생계를 책임져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QIP도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저희가 CMS를 도입했지만 아직 후원자가 그만큼 많지는 않거든요. 

 

그럼 마지막 한 가지는 안정적인 재정으로 하면 되겠네요?

마늘: 네. 왜냐면 커뮤니티가 갑자기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퀴어들에겐 특히나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커뮤니티가 중요한데, 갑자기 공중분해가 되면 거기서 오는 상실감들이 굉장히 클 거라고 생각 해요. 

 

재정 문제는 정말 거의 모든 단체가 고민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실무자의 임금을 주기에도 벅찬 곳이 많다보니 자원활동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게 되는. 

마늘: 그래서 지금 취업하신 분들이 굉장히 큰 금액들을 후원하고 계세요. 서울의 큐이즈(QIS,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나 컴투게더(연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처럼 20년씩 된 모임들은 졸업생들이 홈커밍데이 같은 행사에서 후원금을 많이 내겠죠. 저희도 이제 7년, 8년 정도밖에 안 되긴 했지만 졸업생들이 취직을 하면서 확실히 후원을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한참 활동할 때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아, 빨리 돈을 벌어가지고 달달이 돈을 많이 많이 기부해서 QIP 재정이 좀 탄탄해졌으면 좋겠다.” 다들 자기가 활동한다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자기는 돈을 많이 벌어서 후원을 할 테니 활동은 다른 누군가가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웃음) 

 

좋네요. 보라님은 어떤가요? 자신이 속하고 싶은 커뮤니티의 중요한 특징 세 가지는?

보라: 그냥 마음대로 상상해보는 거죠? 저는 세 가지가 좀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첫 번째는 회비가 없는 곳이면 좋겠어요. QIP에서 활동할 때 고민이 많았거든요. 부산의 유일한 퀴어 커뮤니티인데, 회비까지 받아서 문턱을 높여야만 하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후원금만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탄탄한 커뮤니티였으면 좋겠어요. 회원들이 활동하면서 돈을 써야 할 때 좀더 걱정 없이 편하게 쓸 수 있는. 마지막으로는 목적이 없는 단체였으면 좋겠어요. 아까 한 이야기와 같은 건데, 뭔가 성과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활동하는 과정 자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상입니다. (웃음)

 

좋네요.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져요. 이제 마지막 질문까지 마쳤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오늘 인터뷰 다들 어떠셨나요? 

마늘: 재밌었어요. 간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요. 

 

보라: 저도 즐거웠어요. 

 

좋아요. 그럼 이 정도로 마무리 하도록 할까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