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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아카이빙] 대전 살이 곧 오십년차, 소영님의 인터뷰

전국퀴어모여라 2021. 11. 10. 09:32

대전 살이 곧 오십년차, 소영님의 인터뷰

 

인터뷰어 : 레놀 

인터뷰이 : 소영 

 

소영님이 참여한 전퀴모 행사 후기

1. 전국퀴어모여라 '대전 산책' 

 

대전 모임에 가면 늘 어딘가에 자리하고 계셨던 분이 있다.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또 웃고 계셨다. 나에게 소영님은 유독 ‘어떤 사람이실까?’하고 호기심이 가는 회원이셨다. 알면 알수록 멋있으시고 대전 회원들만 독차지 하기엔 너무도 보물 같은 소영님을 전퀴모 여러분들에게도 꼭 소개시켜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다니!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에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본 것 같다며 오히려 인터뷰를 하는 저에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던져 주시는 유쾌한 분 대전 소영님의 인터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영님. 요즘에는 어떤 일을 하고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지금 여성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 저희가 성폭력 상담소를 오픈 해서 지금 성폭력 상담소 업무를 보고 있어요.

 

그럼 일 말고 다른 일은 무얼 하고 보내시나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정말 하루하루 살아남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이 들어서 지금 소진되어 있는 상태이긴 해요. 제가 이제 여기 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게 곧 2년이거든요. 상담 건수나 지원하는 건수는 많지 않지만 벌써 너무 지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생존기 같은 느낌이 되게 많이 들어요. 몇 년 동안 공부라던가 책을 본다던가 이런 자기 개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것 같고 그냥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살고 있고 말이에요.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목표가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전퀴모 대전 멤버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똠양꿍

하루하루에 굉장한 무게가 느껴지는데요. 어떤 점이 특히 힘이 드시나요?

요즘 단체들이 그렇겠지만 여성 단체들은 특히 어려워요. 지원을 받는 단체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성을 가지고 순수하게 우리의 활동 목적에 동의하시는 회원들의 회비를 수입으로 운영을 하고 인건비가 나가고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다른 시민단체보다 특히 어려운 , 여성 단체의 활동 목적에 동의를 어렵고, 여성 단체는 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하구요.  2020, 2021 들어 서서 , 이십 지금 삼십 대들의 백래시가 엄청 심해졌잖아요. 그러면서 활동이 어려워지지 않나 이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 돼요. 뭔가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본인들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그냥 느닷없이 공격하고 이런 것들이 많다 보니까 확실히 여성 단체들이 활동하는 반경이 좁아지게 되는 같아요. 아직 지역은 서울처럼 대놓고 공격받고 이러진 않거든요. 지역의 특성이 있어서 대전이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한 폭력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사실 알게 모르게 계속 있어왔던 터라. 어쨌든 그래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살고 하루 마무리 잘하는 어느새 목적이 돼버린 상황이에요

 

그렇군요. 요즘에 여성 단체든 성소수자 단체든 활동가들이 전반적으로 소진 가고 있는 시점들인 같아요.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소영님은 전퀴모에서 어떤 행사들을 참여하셨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전퀴모 처음 대전산책이라는 모임에 나갔었고, 카이스트에서 영화제 때도 있었고, 그리고 다음에 조금씩 모였었잖아요. 궁동에 있는 와인 바에도 갔었고, 와인 페스티벌도 갔었는데 저는 같이 가지는 않았고 이후에 와인 바에서 함께 모여 와인 페스티벌에서 가져온 와인을 나눠 먹었죠. 충대 정문 대로변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도 갔었어요. 그때는 새로운 분들이 오셨던 같아요. ! 우리 둔산동에 있는 피자 집도 갔었어요. 치킨집도 가고. 저는 빠지고 갔던 같아요.

 

그렇다면 혹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같은 있을까요?

전민동에 술집 빌려서나는 나는 누구 누구이고 누구입니다이런 자기소개 저는 깜짝 놀랐던 , 성소수자가 본인을 명명하는 단어가 저렇게 많았던가? 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느낀 나는 진짜 고리타분하구나’. 구시대 적인 거죠. 제가 이십 대, 삼십 대 때는 내 정체성을 얘기할 수 있는 그 단어들이 되게 한정적이었잖아요. 그래서 되게 놀라웠던 게 시대가, 사회가 이렇게 변하면서 본인들을 정체화하는 단어들이 이렇게 폭넓고 많아졌구나. 그리고 저렇게도 쓰일 수가 있구나. 공부할 게 무궁무진하구나. 내가 좀 더 공부를 해야 되겠구나. 이쪽 분야에 그렇게 열의를 불태우다 또 시들해졌죠. 그때 그게 저는 되게 신선한 충격이었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저는 나를 소개할 그냥 레즈비언인 이라고 소개 했었고. 팸이니 부치니 하는 이런 것들은 저희가 이십 때나 쓰다가 삼십 들어오면서 되게 가부장적인 색채가 강하고 가부장제에서 비롯 것이니까 쓰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한참 있었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러면서 그냥 단어로 레즈비언입니다 라고 함축적인 단어로 소개를 하던 것들이 지금은 단어들이 너무 많아진 거예요. 그러면서 되게 신선하고 많이 배웠던 같아요. 그때 공부를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나한테도 이런 나의 이름을 만들어줘야 되는 건가? 근데 되더라고요. 어렵기도 했고 신선한 반면 되게 어렵게 다가왔던 같아요.

소영님이 문화충격을 받았던 날. 칵테일 수보다도 많은 성정체성과 성적지향! 

 

전퀴모 행사에 참여 하셨을 때는 기분은 어떠셨어요?

되게 떨렸어요. 제가 낮도 많이 가리고 낯선 공간에 대한 불편함 같은 있거든요. 이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생긴 같기도 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도전하는 조금씩 줄어들잖아요. 새로운 하게 되고, 계속 하던 것에 익숙해하고 안주하게 되고. 그때 처음 전퀴모에 나갔을 때도 사실 적지 않은 나이었어요. 당시 사십 초반에 전퀴모에 갔으니까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이 올지 설렘도 한편 있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제가 커뮤니티 활동을 7-8 가까이 하지 않고 혼자 고립되서 살고 있던 때였고,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어떤 사람들이 올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같아요.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렇게 혼자 고립되서 살다가는 정신도 뭐도 와해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어쨌든 피해자 지원 기관에 있다 보니까 언젠가 나도 성소수자를 지원할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었고. 그리고 지역의 커뮤니티는 사실 활성화가 되다가도 서서히 사그라들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패턴이 많이 있는 같아요. 삼십 대부터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외롭기도 했었던 같고. 제일 원인은 고립이었던 같아요.

 

우리 워크숍 한번 가야겠네요.

소영님께서는 대전에서 하시는 활동가 일을 대전 다른 지역의 다른 사람들과 성소수자 활동으로 연관시킬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우리 단체 내에서도 그런 고민이 있어요. 여성 단체니까 어쨌든 같이 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성단체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는 부채감 같은 있어요. 여성운동을 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는 항상 있었고, 여성운동 범주안에 레즈비언들을 포함시켜서 같이 가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여성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분야별로 전문화가 되는 같더라구요. 저는 성소수자 운동이 지난 20 동안 급발전 하고 자기 목소리를 찾고 힘이 실리고 있다라는 개인적인 견해가 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지 않았나 해요. 그런데 이게 과연 전국적으로도 동일하게 마찬가지인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같아요. 지역에서는 여성단체와 LGBT 함께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고민인데 실제로 그걸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워낙 일도 많고 고민 만하고 실행에 옮기는 점을 저희 활동가들하고도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고민만 되지 어떤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인 같아요.

 

어떠한 점이 가장 문제일까요?

사실 저희를 찾아와 주시는 지역의 소수자 분들도 계시고, 20-30 활동가가 없는 같아요. 그게 현재 전국 단체들의 한계 이기도 해요. 서울은 그래도 인력 풀이 많거든요. 서울 단체만 가더라도 민우회나 여성연합이라든가. 여기만 가더라도 사실 이삼십 활동가들이 굉장히 많은데 지방으로 내려올수록 이삼십 활동가들이 없어요. 저희도 고령이거든요. 이게 어느 순간 맥이 중간에 끊겼어서 공백에서 오는 갭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구요. 사실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이십 대의 친구들은 우리 이해 못하고 우리도 이십 대를 이해 못하고. 이건 세대 간의 갭이 굉장히 큰데, 이런 활동에서도 나타나지 않나 싶어요. 안타까워요. 후배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우리는 물려주고 빠져줘야 되는 나이인데 후배들이 없는 사실 문제죠. 역량이 좋은 친구들은 서울 하게 되구요.

 

소영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서울에 많은 게 갖춰져 있지만 그래도 지금 대전에 살고 계시잖아요? 계속 여기에 계시는 그런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을까요?

제가 좀 도전정신이 없어요. 제가 대전에서 태어나서 대전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다 다니고 직장을 잡아서 쭉 살고 있거든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제가 지역을 못 벗어 나는 것 같아요. 서울로 갈 계기도 있었거든요. 예전에 같은 쪽에서 일하던 후배가 서울로 오라고 제안을 해서 한창 고민 한 적은 있었는데, 제가 사주에 흙이 많다 보니 대전이 田(밭 전)자를 써서 대전에서 못 벗어난다는 얘기도 있더라구요.(웃음)

그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두려운 거죠. 내가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한다? 비슷한 일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너무 두려운 거예요. 또 제가 성향이 어딘가를 떠나려면 여기를 정리를 완벽하게 하고 가야 하는 성향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지역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정리 하고 서울로 가서 집도 얻어야 되고, 이런 하나부터 열까지가 저한테는 다 도전인 거예요. 사실 떠나기 쉽지 않은 성향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도 제주도에 가서 살 생각을 좀 했었거든요. 제 로망이 제주도에 가서 사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좀 바뀌어서 그냥 근처에 시골 아무 데나 가도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제주도로 옮기려면 또 너무 많은 품이 들기도 하고 제가 데리고 있는 고양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하는가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짐들은 다 버리고 가서 새로 사야 되나, 제주도가 집 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임대주택을 넣어놓고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는 구체적 계획까지도 사실 있었는데 어쨌든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저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지금 본인의 퀴어적인 소통범위에 만족을 하고 계신지?

퀴어적인 소통 범위는 만족을 전혀 못하죠. 왜냐하면 없으니까요. 한동안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아요. 최근 3, 4년 동안은 삶의 굴곡이 많았어서 그럴 만한 필요함을 느낄 정도의 여유가 사실 없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지역에 그런 모임이 있고 그런 활동들이 있고 단체가 있고 그런 커뮤니티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의무적으로라도 참여를 하거나 같이 하거나 이런 게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사실 없잖아요. 제가 어떤 단체의 후원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라도 했었을 텐데 그런 게 아예 지역에는 없다 보니까 그런 생각 조차 사실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속하고 싶은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세 가지가 있다면?

우리 LGBT뿐만이 아니라 단체 활동에서 다 일맥상통하는 내용인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유지를 하면 오래 가겠지만 그들을 계속 참여시키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가? 활동을 계속 알리고 그것에 대한 동의를 얻고. 그리고 일반 단체와는 다르게 본인이 오픈 되는 것에 대한 되게 굉장히 큰 두려움이 있잖아요.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있구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함께 고민하고 나가야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를 또 어떻게 다룰 것인가. 되게 다양할 것 같고 또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제 경험상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리고 사실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편견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어떻게 같이 포용하면서 갈 것인가? 하는 이런 것들은 그냥 늘 상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은 정말 별거 아니고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들을 그 안에서 풀지 못하고 찢어지고 계속 말 만들어내고 사람들한테 상처 주고 그러니까 또 나가고. 이런 것들이 사실 그 안에서만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따라다니는 문제인데 그것들을 잘 풀어나가야 커뮤니티가 오래 지속한다고 보여지거든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되는 건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저의 얘기를 하자면 제가 두 달만 있으면 50이에요. 그래서 지금 갱년기도 왔고 노안도 너무 심하게 와가지고 지금 돋보기 쓰고 있거든요. 귀도 잘 안 들리고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너무 요즘 몸으로 느끼고 있는 거예요. 갱년기가 오고 신체적으로 기능이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나이 먹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좀 건강하게 갱년기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요즘에는 나이 먹음이라는 게 이렇게 온 몸으로 느껴지니까 조금 힘들게 느껴져요. 제 나이 되면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저는 일을 해야 되는데 자꾸만 놓치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이런 것들이 가장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뭐 이런 것들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나이 든 퀴어들의 모임이요. 다들 모여서 ‘당신은 좀 어떠냐?’ 하는 모임인거죠. 실버 전퀴모.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워크샵 꼭 가야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