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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퀴어 모여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본문
다정(광주성소수자성경읽기모임)
비와 당신의
이야기
“후안, 네가 나와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것이 너의 잘못일 수 없듯이,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도 나의 잘못이 아니야.”
- 페드로 알모도바르 <욕망의 법칙> 中
곧 비 냄새가 날 것 같은 축축한 공기, 난 비는 좋아하지만 비오는 날이 힘들다. 딸기를 좋아하는데 딸기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비를 좋아하는데 비가 힘들다는 건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 여느 때처럼 나는 모임에 지각을 했고, 도착하니 형형색색의 머리카락들이 날 반겼다(그 중 내 머리가 가장 말도 안 되는 색이긴 했지만). 몇 번 봐서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모임의 흐름을 깨고 느닷없이 끼어드는 침입자가 되는 순간은 멋쩍으면서도 늘 설렌다. 조금 변태 같지만, 사실 난 많이 변태다.
전퀴모퀴어클레이카드(이하 클레이카드)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불쑥, 은근슬쩍 섞여서 참여했다. 여러 번 했지만, 할 때마다 새롭고 재밌다. 약간 보드게임 같아서 정말 신난다. 다른 사람이 뽑은 카드 질문에 마음속으로 내 대답을 해보곤 한다.
후기를 한참 지난 후 쓰려다보니 도무지 내가 뽑았던 질문이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 추석모임에서 클레이카드 할 때 뽑았던 질문은 지금도 기억난다. “향기, 나에게서 어떤 향기가 날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가 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에게 물들 테니까.
퀴어문화축제(이하 퀴퍼) 이야기도 나누었다. 올해는 아직 한 번도 못가서 아쉬웠는데, 모임을 통해서 다른 지역의 퀴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재미있는 일화도 많고, 논쟁거리도 많았다.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구나 싶으면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축제가 열리는 걸 보면 외로운 걸음은 아닐 것이기에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프리카 코사족 속담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외로운 걸음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멀리까지 못 가면 또 어떤가,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더 다양한 지역에서 퀴퍼가 열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역에 살면 수도권에서 열리는 퀴퍼에 참여하는 것이 수고롭기도 하고, 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있어서 더 다양한 지역에서 축제가 열리길 바란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예산과 행정 등 쉽지 않은 문제를 안고 가야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타협점도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다. 꼭 1년마다 하는 것에 매이기보다 가까운 지역끼리 합동으로 진행하는 것(예를 들면 올해는 광주, 내년은 전주)은 어떨까 하는 절충안도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오늘 어땠는지 소감을 나누고, 포스트잇에 적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아마 특별 이벤트(?) 같은데, 전퀴모 5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작업(?)을 했다. 두 명씩 한 조가 되어 하얀 도화지에 색을 채워 넣었다. 우리의 형형색색 머리카락만큼이나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하얀색을 어지럽히는 것은 정말 유쾌한 작업이다. 빈 종이를 두려워했던 어떤 작가가 생각난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빈 종이를 채우는 것이 즐겁다(과제를 할 때 뜨는 하얀 화면은 끔찍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친구가 보내줬던 니체의 시가 생각났다. “언제가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내리는 이 비도 누군가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면서 쌓은 삶의 조각들일까? 당신이 구름이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살아줘서 고맙고, 살아 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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