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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이야기

[전퀴모 5주년 자축자축!] 같이 만들어요, 전퀴모

전국퀴어모여라 2019. 2. 28. 15:08

같이 만들어요


재경(전국퀴어모여라)

 



이걸 만든다면 우리는 전설이 될 것친구들에게 전국퀴어모여라(이하 전퀴모)를 만들자고 하면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5년 전, 지금처럼 쌀쌀한 늦겨울이었었죠. 돌이켜보면 참 말도 안되는 말이었어요. 말하면서도 저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끼리 즐겁게 놀고 싶었던 거죠. 아니, 지역에서도 편하게 놀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자라고 대학까지 다녔었어요. 광주에서 사는 동안 어느 누구도 모두가 감탄하는 좋은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이렇게 지루하고, 같이 서점에서 일하는 언니만 보면 가슴이 뛰는건지,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정, 혹은 동경 같은 걸로만 알고 있었죠. 어떤 단어도 나를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그건 참 슬펐죠.

 

나를 설명하는 단어는 서울에 와서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정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헤어스타일을 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나같은 사람들이 서울에는 많더라구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드디어 내가 원하는 옷을 찾은 듯,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제야 알게된 거였는데, 연애라는게 원래 그렇게 지루하지 않는 거였더라구요.

 

그래서 전퀴모를 만들었습니다. 나처럼 지역에서 불행한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에요. 지난 5년 동안 전퀴모는 광주를 시작으로, 대전, 부산, 대구, 제주도, 전주를 오갔습니다.


대전에서 다른 단체들과 연합하여 치른 <불온한 당신> 상영회도 했었어요. 서울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와 주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지역에서 용기를 내어 성소수자 모임에 나온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져야 하는 건지, 또 지역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소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깐요.


그리고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이 되면 <전퀴모 지도 프로젝트>를 했어요. 내가 사는 곳, 내가 태어난 곳에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건 정말 기쁜 일이거든요.

 

5년간 전퀴모와 함께 하면서, 호기롭게 말했던 전설을 만드는 건 전퀴모가 아니라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들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았어요. 하늘만큼 치솟았던 자긍심은 그들을 만나면 더 작아지고 더 겸손해졌습니다.


처음 광주에 갔을 때는 한명, 그 다음에는 10명을 만났습니다. 현재 광주에서 전퀴모임지기로 모여 있는 분들은 30명이 넘습니다. 대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 만난 대전의 성소수자는 둘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땠나요, 5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었죠. 대전에서 열린 상영회는 또 어땠고요. 어느 지역엘 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더 모이고, 조금씩 더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벽장에서 나오는 것만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닐 거예요. 목표도,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함께 모여 있다는 것, 늘 나를 지지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보다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잖아요.


지금에서 5년이 지나면, 우리는 더 행복해 지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지역의 모든 성소수자분들 화이팅,

우리 곧 만나요.

그리고 행복하게 우리만의 전설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