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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와 함께 제주도 방문을 마치고

전국퀴어모여라 2015. 7. 27. 23:10



전퀴모와 함께 제주도 방문을 마치고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조나단이에요. 성소수자 운동판에서 요즘 가장 HOT하다고 소문들은 전퀴모와 함께 5월 황금 휴일을 맞아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사실 이미 알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으로 ‘응. 쟤네 저런 활동 벌이고 있구나’ 정도의 생각뿐이었던 터라 HOT한지 체감은 잘 못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서울,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퀴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요. 전퀴모에서 제주도에 간다고 하길래 여행도 할 겸 슬쩍 함께 동행했는데,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도 열심히 찍고, 대화에도 더 주도적으로 끼어들었겠지만, 몰랐기에 소감으로 방문기를 대체하고자 합니다. 어쩌겠어요. 허허.


제주도에서는 제주도가 고향인 오랜 행성인 커플 회원의 집에 머물렀는데요. 마침 방문한 시기가 이사 시기와 겹쳐서 3분만 걸으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새 집에서, 행성인 커플의 지인인 제주도 퀴어 분들 4명과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어요.


만나서 대화 나누며 가장 많이 든 느낌은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막상 닥쳐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편견이나 기대를 가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제가 만날 제주도에 사는 퀴어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평생 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 말이지요. 제 주변에는 제주도에 내려가고 싶어하는 퀴어들이 많거든요. 이미 이사한 지인과 곧 이사 예정인 지인도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제주도가 이미 고향인 사람들이기에 제주도를 떠나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은 아예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났던 대부분의 제주도 토박이 퀴어들은 제주도를 떠나고 싶어하더라고요.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 바다를 보면 ‘아, 예쁘다!’ 고 반응하는데
우린 ‘아, 감옥!’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주도 좁아요. 이제는 원래 내 친구, 또는 내 친구들이 사귀었던 사람들만 남아있죠.
누굴 새로 만나기 진짜 힘들어요. ”


“게이 바에도 가기 쉽지 않아요. 누구네 집 아들 아냐? 하고 단번에 알 정도로
서로 알고 지내기 때문에 소문날까 봐 쉽게 가지 못해요.”


“갈 수만 있다면 서울, 육지로 가고 싶어요.”


“서울로 갔어도, 여간하게 성공하지 않고서는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기 어려워요.
말이 도니까요. 그러니 떠나는 것도 쉽진 않죠.”


그렇지요. 그렇겠네요. 뭐라고 더 보태어 할 말이 없어 묵묵히 들었습니다. 수도권에 부모님께서 살고 계시지만, 서울에서 따로 독립해서 사는 저도 비슷한 결의 두려움과 답답함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요. 어서 빨리 부모님 집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 이민을 결심하는 친구들, 제주도로 향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더 자유롭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은 거겠지요. 


이태원, 종로, 홍대 같은 특정한 곳에 성소수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어디에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드러내지 못하게 가두고 얼굴 없이 만드는 세상에 더 많은 인권 감수성이 생기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우리가 우리 자체로서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전퀴모는 전국의 퀴어를 만나며 그 곳의 이야기를 모아내고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방식으로 기여하는 것이고요. 제주도로 향할 때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제주도로 이사와서 사는 퀴어들도 만났으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그렇게 기획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낯선 제주도 사투리로 부리는 기글, 제주도 이마트에서 발견한 제주도에서만 유통되는 싼 삼다수, 콩잎쌈, 현지인들만 가는 맛집, 현지인이 소개해주는 제주도 사람들 이야기 등 제주도를 그저 여행으로만 갔을 때와는 다른 방문이었습니다. 전퀴모 흥미롭네요. 다음에 다른 지역에 갈 때 슬쩍 또 함께 할까봐요. 마지막으로 방문 기간 동안 환대해주신 오랜 행성인 회원 두 커플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정말 잘 머물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