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퀴어 모여라

부산은 삼세번 본문

경상도

부산은 삼세번

전국퀴어모여라 2016. 3. 10. 20:47

부산은 

삼세번


어나더(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월이 저물어 갈쯤, 전퀴모에서 부산 방문을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새벽 여섯시에 울린 알람에 이기지 못해 비몽사몽한 상태로 버스에 몸을 맡기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다.하지만 그 예상은 잔인하게 빗나갔다. 비몽사몽이 아니라, 푹 자서 상쾌한 기분으로 밖이 환할 때 눈을 뜨게 되었다. 핸드폰을 보자마자 지각했음을 알게 되었고 5초동안 패닉에 빠졌다가 바로 코레일 어플을 켜서 가장 빠른 KTX열차를 예매해 급히 출발했다. 


급하게 밀면을 먹는 모습


다행히 많이 늦지 않아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점심 식사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인사를 급하게 끝낸 뒤 부산의 명물, 밀면을 흡입하듯이 급히 식사를 했다. 먹는 속도와 아침의 멘붕과는 별개로 다시 만난 밀면은 여전히 감동이었다. 식사 뒤에는 남포동에서 잠깐 관광을 할 예정이었지만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생애기록 부산팀(이하 부산팀) 분들과의 만남 시간이 점점 다가와서 깡통시장과 책방골목은 뒤로 하고 약속된 장소에 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팀 활동가이신 벗들님, 옥상달빛님, 앤드님, 그리고 부산대성소수자동아리(이하 QIP) 기획부장이신 혜욘세님까지 합류해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세 분과의 수다회는 일반적인 질문들과 함께 이번에 전퀴모에서 야심가득담아 만든 ‘퀴어 클레이카드’로 진행됐다. 초반에 자기 소개를 할 때는 긴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는데 부산팀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시고 계시고 앞으로는 뭘 하고 싶으신지, 서울팀과의 소통은 어떤지 등 익숙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진행할수록 점점 더 편하게, 그리고 열심히 대답하시는 모습을 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써본 퀴어 클레이카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생각된다. 카드를 뒤집어 놓고 무작위로 골라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었고 고루하지 않은 방법이어서 그런지 다들 재미있어 하셨다. 나는 커밍아웃 카드를 뽑아 내 커밍아웃과 아웃팅에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다른 분들은 본인의 롤모델이 누구인지,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주제의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부산팀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을 때 참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서너명 밖에 없는 데에도 계속 활동을 지속해 가고 있다는 거였다. 직접 활동가 분들을 만나면 생애 기록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의지가 전퀴모를 만나면서 더 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기뻤다. 그리고 부산의 두 성소수자 단체,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부산팀과 QIP를 연결시켜줄 수 있었던 기회기도 했다.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는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부산대 근처 술집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회원분들과 부산의 퀴어 분들, 함께 수다회를 진행했던 부산팀 분들과 함께 한 모임이 있었다. 누가 올까 싶었던 술자리는 30명이 넘는 퀴어 분들이 자리를 꽉꽉 메워주셨다. 전퀴모 멤버들과 전퀴모 팀원들, 기존 행성인 회원들, 부산팀의 애인분들에 QIP 회원들까지 구성도 다채로웠다. 워낙 많은 분들이 모여 서로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전에 뵀던 QIP 분들을 다시 보는 반가움도 컸고, 한결 더 친해진 기분이 들어 술자리가 끝나고 나서는 뿌듯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다음 날은 행성인 회원들과 간단히 부산을 둘러 보았다. 지난 여행 때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해운대 해수욕장에 가서 실컷 바다 구경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먹이기도 하고 소원을 담아 달집 태우기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해운대 옵스 베이커리에 가서 성공적으로 맛있는 빵도 여럿 샀다. 너무 부산에 심취해서 다시 올라가기 싫었던 모양인가. 마지막에는 너무 늦게 출발해 기차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뻔 했다. 얼마나 전전긍긍했던지. 이번 부산 방문은 스릴러로 시작해서 스릴러 끝난, 수미상관 같은 그런 여행이었다.


평생 부산을 한 번도 가지 못하다가 작년 여름에 간 내일로 여행을 시작으로, 성소수자부모모임을 통해서, 이번 전퀴모 방문까지 근 6개월 간 세 번이나 가게 되었다. 매번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로 가다 보니, 부산의 각각 다른 매력들을 보게 되었다. 특히 지역 네트워킹과 관련된 이번 전퀴모 행사는 퀴어운동에 대한 나의 열정도 불태웠다. 그리고 나의 열정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열정도 같이 북돋아줬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둔다.


갈매기와 바다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