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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활동하지만, 사는 곳은 먼 활동가의 이야기

전국퀴어모여라 2014. 6. 6. 10:28


안녕하세요. 00 거주자지만 활동은 서울에서 하는 소희입니다. 

저는 아침 6시쯤 일어나  ktx를 타고 서울에서 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밤 12시쯤 집으로 돌아가서, 잠만 자는 짓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고 있어요.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4일은 그 활동들을 하는데 필요한 교통비를 벌어요. 그래서 돈을 벌지만 항상 가난해요. 히히


‘뭐 하러 그렇게 까지 해?’, ‘네가 사는 지역에서 활동하면 더 편하지 않아?’ 라고 많이 물으시는데, 지역에서 할 수 없으니까 서울로 가는 거죠. 뭐 별 거 있나요. 아무리 지역에서 내가 뭘 해보려고 해도 결국에는 '차라리 서울 가고 말지' 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어느날 나에게 콕 박힌 영상의 장면


지역은 소수자운동을 하기에 너무 버거워요. 예전에도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해보고 싶다고 나댄 적이 있었거든요. 가뜩이나 사람을 모을 수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번개를 열었는데 아무도 안와서 파토난다던가, 겨우겨우 사람이 모여서 같은 성소수자끼리 공동체를 만들려 해도 부담스러워하고, 탈반할거며 연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역에서 운동해온 진보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활동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본인들 조직에 편입시키려고 했어요. 나중에 처음 요청한 진보 단체의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청소년 성소수자와 같이 활동해봐서 아는데, 나이 먹으면 이성애자 되는 거다. 청소년 성소수자로 활동하던 애 있었는데, 잘 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그들과 연락 안하는 건 그 조직 사람들의 인권감수성 너무 떨어져서인데 말이죠. 서울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적어도 혼자 감당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아니, 서울에 있었다면 성소수자인권단체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겠군요! 결국 같이 준비하던 멤버 중 한 명이 서울로 가면서와해됐어요. 뭐. 같이 준비하던 멤버라고 해봤자 두 명이었으니까요. 여튼 지방에서의 삶은 계속 서러웠어요. 


저는 중학교 때 상담한 선생님한테 아웃팅 당하고 인문계에 진학하기 힘들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특목고로 진학을 했는데 거기까지도 소문이 따라오더라고요.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너무 외로웠어요. 친구를 찾고 싶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성소수자 모임에 가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만나봤자 돈도 없어서 거창하게 놀지는 못했지만, 자살하고 싶을 때 죽지 말라고 하고, 같이 울어주고 욕해주는 친구들이었어요.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같이 살자며, 퀴어타운을 만들자는 다짐도 했었죠. 그게 당시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하지만 거기에서도 순수하게 즐거워 할 수는 없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주로 서울에서 정모를 열잖아요. 번개도 서울에서 가장 많이 열리잖아요. 저녁 먹으라고 받은 돈들을 모으고, 버스비 모으려고, 몇 정거장씩 걸어 다녔는데도, 항상 빠듯했어요. 놀다보면 일반고속버스 놓쳐서 심야버스를 타야하거나 무궁화호를 못타고 ktx를 타야만하는 날이 있잖아요. 돈이 없는 날에는 길에서 구걸을 하기도 했어요. 막차 시간을 맞추느라, 오래 있지도 못하고, 그들과 만나는 건 항상 즐거웠지만,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소외감을 느꼈어요. '정말 친구라면 가끔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만 일방적으로 만나러 가야해? 왜?' 라는 생각도 많이 해요. 늘 서울에서 모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하고. 


어느 날 모임에 자주 오고,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서울 사는 애가 나타났어요. 그 애는 늦게 가입했으면서 사람들과 무척 친하게 지냈어요. 나는 활동 하고 싶어도 지방이라 참석하기도 어렵고 해서, 늘 수동적으로 모임에 참가하고 그랬는데, 그 애는 모임의 사회도 보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더라고요. 성소수자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퀴어퍼레이드도 가고 싶고, 동성애자인권연대 행사도 가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못했어요. 마음은 늘 행사가 가득한 서울이지만, 현실은 지방이니깐요. 그러다보니  SNS로 정보 공유만 하는 입진보라고 문제제기 까지 받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 서울까지 가는게 참 버거워서 지치는 날에 읽는 것


왜 모임은 늘 서울에서 하는 건가요! 교통이 편리해서라면 우리나라 한!가운데에 있는 대전이 낫지. 서울보다 물가도 싸서 갈 곳도 더 많은데 세미나실도 싸고 식당도 싸고 카페도 싸고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할 수 있는데 칫칫칫!


비수도권 퀴어로 살면서 즐거운 점도 써야 할 텐데 생각나는 게 없어요. 어쩜 좋아.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을 했거든요. 무슨 얘기를 쓸까. 진짜 너무 서러워서 서울 지하철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막상 쓰니 어렵네요. 이만 마칩니다. 끝!

짝사랑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누군가를 깊게 그리워하는 중